시사/경제

일본 거품경제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

노루아부지 2023. 5. 6. 13:56

일본의 거품 경제

일본의 거품경제(バブル景気, Japanese asset price bubble)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시장 전반에 나타났던 거품경제를 뜻합니다. 이 당시 일본은 비정상적인 자산 가치 상승을 겪게 되는데, 이후 거품이 붕괴되며 1,500조 엔의 자산(한화로 약 1경 6,500조 원)이 공중분해됐습니다. 일본 거품경제의 시기는 대개 1986년부터 1991년까지(플라자 합의부터 제1차 헤이세이 불황이 터지기까지)로 보며, 이후 일본은 장기 불황을 맞게 됩니다.

 

거품 경제 에피소드

  • 면접만 보러가도 면접비로만 20~30만 원 지급
  •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흑자 도산
  • 월급 봉투를 세로로 세우면 섰다
  • 고등학생 세뱃돈이 30만 엔을 넘겼었다
  • 소니 입사시험 도중 졸려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합격한 사람이 있다
  • 일본 전체의 부동산 가격 > 미국 전체의 부동산 가격 * 4

 

 

1980년대 일본의 위상

1980년대는 일본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세계 50대 기업 순위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세계 50대 기업 순위

 

  • 세계 50대 기업 중 무려 33개의 기업이 일본 기업
  • 세계 반도체 10대 기업에 일본전기(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시, 마쓰시타 등 6개의 일본 기업이 포진
  • 시가총액 1위인 NTT의 시가총액은 2위 IBM의 3배 이상
  • 1988년 한국의 GDP는 2023억 달러로, NTT 시가총액의 70% 수준
  • 일본의 GDP가 나머지 아시아 국가 전체의 GDP를 합친 것보다 컸다.

 

 

미국이 일본 죽이기를 한 이유

미국의 경제가 휘청이는 사이, 일본이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닉슨 쇼크(1971년)
  2. 1차 오일 쇼크(1973년~1973년)
  3. 미국의 급격한 스태그플레이션(1970년대)
  4. 2차 오일 쇼크(1979년~1982년)
  5. 이를 막기위한 연준의 과감한 금리 인상(최대 21.5%)[16]
  6. 달러 환율은 복귀, 그러나 박살 나버린 미국의 제조산업과 실업률(1980년대 초반)
  7. 달러 환율이 오르자 반사이익을 본 일본이 제조업에서 두각, 미국 대외무역적자의 40%가 일본발.(1980년대 초반)

 

1970년대 일본의 경제도 오일쇼크로 침체기를 맞았지만,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를 극복하고 미국과 유럽의 경쟁사들을 고사시키며 세계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분석가들이 히타치나 소니가 인텔이나 IBM을 인수해 버릴 것이라고 전망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같이 나타나는 소위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가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절실했습니다.

 

 

미국의 일본 죽이기

미국의 일본 죽이기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 중에,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플라자 합의와, 자기자본비율 규제입니다.

 

 

일본 거품 경제의 시작 - 플라자 합의

1985년 9월 22일에 G5(프랑스, 독일(서독), 영국, 미국,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미국의 플라자 호텔에서 진행한 합의로 미국이 인의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다른 나라 회폐들(특히 일본 엔화)의 가치를 올린(평가 절상) 일종의 환율 조정 합의입니다.

이 합의로 인해 미국은 250엔이었던 120엔으로 조정하여 수출 경쟁력을 낮추는데 성공합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당시 경제적, 문화적으로 미국의 입지를 침범하던 일본을 성공적으로 저지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신 일본은 엔고 현상, 부동산 경제거품 등 엄청난 경제 타격을 입고 이후 그 여파가 20년간 이어져 소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플라자 합의를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인 원폭투하'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이 플라자 합의를 미일 반도체 협정과 함께 1980년대 일본의 기세를 무너뜨린 두 원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편, 한국은 여전히 원화 가치가 낮았기에 가격 경쟁력이 생겨 이 때 사상 최초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일본 거품경제의 시작 - 합의의 영향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수출이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책을 썼습니다. 이 결과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팽창 분위기였던 일본의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는 엄청난 거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일본 거품경제의 붕괴 - 바젤합의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08121201671

 

[뉴스 인사이드] BIS비율,1980년대 美서 요구 …'日은행 견제용'시각도

[뉴스 인사이드] BIS비율,1980년대 美서 요구 …'日은행 견제용'시각도, 경제

www.hankyung.com

일본 정부는 부동산 대출을 자제하도록 금융 기관에 통지했고, 우리나라 투기규제지역과 유사항 감시 구역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규제를 실시하였지만 이런 규제로는 미쳐버린 부동산 시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일본 부동산 거품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요인이 외부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국제결제은행은 1988년 '바젤합의'를 통해 전 세계 은행들이 1992년까지 자본금을 늘려 총 위험자산 대비 최소 8%를 자본금으로 늘려 유지해야 한다는 권고 규칙을 만들게 됩니다.

 

일명 BIS 자기자본 비율입니다. 

이를 통해 1992년까지 전 세계 은행들은 무조건 BIS 자기자본비유을 무도건 8%까지 맞춰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실금융기관으로 분류되어 외화차입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제금융시장과 무역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평균 자기자본비율이 10%대였지만, 일본은 6%대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무분별한 대출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기 위해 돈을 다시 회수해야 했습니다.

 

일본 거품경제의 붕괴 - 회수

이미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일본 정부는 1989년 3%의 소비세를 신설하면서 동시에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합니다.

일본은행은 1988년 9월에 2.5%이던 기준금리를 1990년 12월 6%까지 올렸습니다.

1991년에는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신규 대출 금지), 기존 대출도 LTV(부동산 감정가 대비 대출액)을 200%-> 70%로 제한합니다.

 

일본 거품경제의 붕괴 - 결과

은행에서는 쓸데없이 대출을 안내줬고 금리를 올려 대출금을 회수하니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린 거품은 꺼졌습니다.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하면 대출이 불가능하니 집을 사는 것도 불가능했고, 급격한 금리인상에 돈을 갚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을 내놓으며 주식과 부동산 자산 가치 하락이 잇달아 발생했습니다.

은행이 돈을 회수하고, 사람들이 빚 갚느라 소비가 위축되니 일본은 이렇게 길고 긴 불황의 터널에 진입하게 됩니다.